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양심수라고 부릅니다. 국가보안법이 정치,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사상,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며, 국가보안법은 헌법에 위배되기에 의당 철폐되어야 하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권이나 현 정권들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써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노련(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의 활동가 7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프레시안은(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826161426) 아래와 같이 보도 했습니다.
경찰은 오 교수 외에도 정원현, 오민규, 남궁원 등 노동운동가를 연행하는 한편 자택 압수 수색을 통해 서적과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남대문경찰서에서 이들의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수사 대상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안보에 위해를 끼치는 문건을 제작, 배포한 혐의, 즉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조치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노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잘 살펴보았는데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안보를 위해를 끼치는 문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작, 배포하였다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렸을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자본의 착취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행위인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없다면 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으며, 이들은 헌법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들의 정치, 사상을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촛불정국, 경제위기, 떨어진 지지도 국정전반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청와대 그리고 한나라당. 그들의 선전포고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언제나 그렇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것이니까요. 촛불시위 초기 배후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던 청와대가 이런 조직사건을 통하여 배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죠. 사노련이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으니 이들을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구속하면 이들은 바로 이적행위자, 간첩과 동일시되겠죠.
그렇다면 촛불시위의 배후는 간첩, 친북좌파 세력으로 규정되며, 그간 문제되었던 과잉진압이나 여타의 것들은 친북좌파세력 혹은 간첩들 속에서 국가를 지키는 숭고한 행위로 포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면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얼마전 부터 심심찮게 나오던 국가안보에 관련된 발언들, 정확하게 기억은 할 수 없지만 '북측이 남남갈등 유도하는 상황 가능성 있다' 등과 같은 발언들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곧바로 이렇게 공안정국으로 이어질 지 몰랐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발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죠. 국가보안법은 헌법에 위배된 악법이며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낡은 수단으로 현재의 일들을 잠잠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족이지만, 기존 NL계열에 집중된 국보법관련 조직사건들이 계급문제, 사회주의로 확대된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멘트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는 이런 비슷한 사태가 더 많은 조직이나 단체를 통해 반복되여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의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2MB정권의 공안정국 선전포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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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성적인 이미지의 도시였습니다. 포항을 처음 갔던 2000년에도, 2003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도 또 그 다음해도 말입니다. 2006년이 되어 포항에 가기 전까진 포항은 남성적인 매력이 숨어있는 선이 굵은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처음 맞이하는 도시, 뜨거운 용광로로 숨쉬는 살아 움직이는 힘찬 도시. 포항하면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들이 남성적인 이미지였습니다. 2006년전까지는 말입니다.
2006년,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찾은 포항은 다정다감한 도시였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을 숨겨놓은 해안선, 수많은 어머님들의 삶의 터전인 죽도시장의 다정함, 도시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는 바다내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갈때 마다 포항의 매력에 빠지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기때문에 그랬겠지요.
2006년 크리스마스 이후로 포항에 가지 못했습니다. 안 간건지 못 간건지 잘 모르겠지만, 포항에 있던 친구녀석도 영국으로 교환학생가버렸고, 이런 저런 사유로 포항을 가지 않았죠. 업무차 가게 되더라도 상주시간을 최소화하기도 했고 뭐 이런 저런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이번 휴가때 다시 포항을 찾았습니다. 친구가 내년 봄이면 학위를 따고 포항을 떠나기때문에 아무래도 생의 마지막 포항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다정다감했던 도시, 그 도시에서 저는 차가운 이별을 경험했고, 그 도시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도시, 다시는 찾지 않을 도시리스트에 포항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만 다시 한번 포항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나를 추억속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함께 가던 던킨, 그녀가 좋아했지만 주인의 사정으로 한번도 문을 열지 않은 밀면집, 찜질방...... 수많은 곳들이 그 시절 나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철지난 해수욕장 낡은 커피숖도 말입니다.
포항, 여전히 다정다감한 도시였습니다. 익숙한 그 거리에서 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은 많이 받았지만, 내가 받았던 부드러움의 느낌을 간직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종전의 부드러움과는 다른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포항에 있는 4일이라는 시간동안, 일상보다 더욱 더 많은 곳에서 시간을 잊었고, 그녀를 떠올려봤습니다. 나와 상관없이 잘 살겠지만 말입니다.
친구도 말을 하더군요. 나도 졸업하니 너도 포항 이제 올 일없겠다. 푹 지나다가 가라고 말입니다. 해마다 그 친구의 생일때면 포항으로 내려가 1년간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친구마저 떠나면 포항갈 일 없겠지요. 이상한 여운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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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밤, 고담시티를 구해줄 영웅따위는 없다.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는 수 밖에.. 결국 내가 나를 우리가 우리를 지켜내는 거라고...
+ 지옥행 급행열차를 탈 악인과 선인의 구분은 무의미할뿐. 우리가 모두 악인이며, 더불어 선인이며 상황이 우리를 지배할꺼야.
+ 내 얼굴에 상처가 왜 났는지 알려줄까? 그때 그때 다르지. 이보게 배트맨, 난 당신을 죽이지 않을꺼야!
+ 근데 조커, 아니 히스레져 왜 이렇게 일찍 죽은거야. 아쉽고 또 아쉽다고. 리버 피닉스가 죽은 사람이었음을 알았을때도 이렇게 아쉽지 않았다고
+ 역시 올해의 최고의 영화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였다규, 아직까지는 다크나이트..
# 파도리에서의 1박 2일
+ 할머니, 아무리 손님이 없다지만 3만원은 너무 하지 않나요? 모텔도 하루밤에 3만 5천원인데 민박이
+ 조용하고 넓은 실내공간, 편리한 취사도구. 우리 1박 2일의 베이스캠프 봉원민박!!
+ 어은돌 해수욕장, 그 펜션 15만원 반성하라구..
+ 파도리 해수욕장의 해옥, 언제 그런 빛을 가진거야?
+ 썰렁한 해수욕장, 물이 차가워서만이 아니겠지? 한적해서 난 좋았다고. 하지만...
+ 난 쫌 짱인듯, 어떻게 전기밭솥도 아닌 그냥 냄비밥을 하나도 안 태우고 그렇게 잘하는지? 게다가 닭도리탕까지..
+ 내가 닭을 사자고 했을때 눈을 흘긴 K, C군 잊지 않겠다.
+ 얼마나 새까매질런지 걱정된다. 걱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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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을 하는 순간, 그 곳은 구겨져 있고,
이내 체념하며 그냥 옷걸이에 걸어버린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다리면서..
생각했다.
온전한지 확인하는 순간 온전치 않게되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름은 사라지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도 없어진다.
김춘수가 말한 꽃은 허구다.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 아무도 내게 와서 꽃이 되지 않는다.
이름을 떠난 무엇이 남아있을뿐.
다림질을 하다가 내가 와이셔츠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20대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확인하려 하는 순간 나는 구겨져 버렸고,
그 사람을 떠났다.
사랑이라는 이름이던,
다른 미묘한 감정이던..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을때, 그 사랑을 학인하고자 했을때
나는 나를 확인하지 못했으며, 내가 온전치 못함을 느꼈고,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꽃이 되어주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게되고..그녀를 떠났다.
누군가가 소금인형을 빚어 내 감정 속으로 던져넣을때
소금인형을 녹이지도 못하고 나는 멀어져갔으며,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난 확인하는 순간 구겨져버렸으며,
그녀와 다시 못 넘을 벽을 홀로 쌓았다.
단순히 말하면 난 나쁜 놈인 것이다.
하지만,
내 20대에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내가 먼저 욕심낸 여자도 있었다.
언제라도 꽃이 되어주리라 다짐했었던..
역시나 난 나쁜 놈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 구절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장래희망이 뭐냐?라는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때는 참으로 쉬웠습니다. 대답하기가..
또래 아이들이 대답하는 것과 비슷하게 대답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범답안 비슷하게 대답하면 칭찬도 받고
운이 좋으면 당시 유행하던 '깐돌이'도 하나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학생이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장래희망은 참으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대통령'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저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장래 희망 비슷한 란에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쓰여져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고민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고
적당하게 과를 선택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독이 되었던 것인지..말입니다.
무슨 일을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당한 고민도 없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4년제 대학을 지원하고, 점수에 맞는 과를 선택하고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쉬운 전공탓인지 재미있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장래희망은 아니 하고싶은 일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앞서 적은 저 구절이 더욱 생각나는 게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질문에 대한 답도 구하게 되고,
혹은 그 대답을 찾기전에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요.
며칠 전에 아버지께 전화가 왔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의 근황을 물으시며 "너 같은 최고인재를 회사가 왜 몰라주는지 모르겠다. 참 멍청한 녀석들"이라고 말씀하시기에 "아버지한테나 최고인재였나 봅니다"라고 대답하자 박장대소를 하시더군요.
근래에 아버지께서 그렇게 크게 웃으시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 같더라구요. 아들래미 힘내라고 그러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소 연락도 잘 안하고 무뚝뚝하기만 한 아들 놈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하셨던 아버지께서 아들내미 기죽는 거 싫어서 한 바탕 웃으시더군요.
제가 무슨 일을 하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찾을지 못 찾을 지는 모르겠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버지한테는 최고 인재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또 한번 용기를 얻습니다.
지금 조금 늦어지는 것은 내가 아직 모르는 나의 꿈과 가능성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다.. 라는 확신을 얻습니다.
만년필을 들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사용해서인지 펜촉이 말라있습니다.
그래서 잉크를 채우는데
"나는 그녀보다 널 더 잘아, 나는 니 만년필 이야기도 알고 있다고..."
라고 말하던 한 소녀가 떠오릅니다.
꽤나 오랜시절 내 주위를 멤돌던 그 소녀는
작년인가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생각을 하면서 살짝 웃어봅니다.
한때는 여자에게 고백도 들어보곤 했구나...하면서..
만년필, 할아버지의 유품이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네요.
내가 그 사람의 사랑이면 안된다.
간간히 보내 온 문자에는 '여전히 무기력하며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잠만 잤다'는 내용뿐이었고, 추측하건되 그 사람은 하루 종일 공복이었을리라.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시간을 보낸 친구야, 밥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 토요일 4시간 남았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그 사람을 자취방에서 구출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기 위해 건대앞 스타시티로 향한다.
둘이서 영화보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일단 영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적벽대전 보자" "싫어, 이런 영화가 제일 싫어." "그럼 뭘" "REC 저거 뭐야? 저거 보자"
"나 공포영화 절대 못 본다."
이런 아옹다웅이 끝난다음 헨콕을 보기로 했다.
밤 9시반이 넘어서 저녁을 먹고, 그 사람의 끼니거리를 사기위해 이마트에 향하며
"나 잠깐 담배 피고 올께, 먼저 장보고 있어!"
"싫어" 담배도 못 핀다. ㅠㅠ
극장안에는 사람이 많다. 웅성거리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꼴통이라고 불리는 슈퍼히어로의 찌질함을 담은 영화.
간간히 놀라운 장면도 웃긴 장면도 나온다.
눈은 screen으로 향하는데 신경은 그 사람에게 집중되어있다.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크게 웃을때도, 이런 저런 것들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역시 영화는 혼자 봐야 제맛이다.
영화관을 선택하는 것,
영화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여러가지가 신경쓰이게 한다.
-. 장마철인데 장마는 쉬고 있다. 힘빠진 장마군 얄밉다.
-. 자동차가 생긴 이후에 귀찮은 일들은 점점 늘고 있으며, 신나는 일들은 줄어들고 있다.
-. 머리가 쉽게 아프고, 잘 낫지 않는다.
-. 고기를 먹으면 쉽게 배탈이 나고, 하루 종일 고생한다.
-. 영어공부를 아니 토익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7월인데 아직까지 야구를 보고 있다. 롯데가 아직 야구를 하고 있다.
-. 듣고싶은 음악은 점점 많아지는데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갔습니다.
파울볼러들도 만나고 했습니다.
파울볼러들이 먼저 가시고,
덕아웃에 글을 남기신 그 분과 함께 남아있다가
그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심심해서
그냥 아스팔트위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피곤도 하고 해서요.
그렇게 앉아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 저를 향해 다가오는지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행이거니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 옆으로 와서는
제 어깨에 손을 얹더니
"오랜만이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낯익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역사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처럼
낯설지만 낯익은
고개를 돌려보니
예전에 함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세상을 바랬던(뭔가 거창하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죠.)
선배였습니다.
참 오랜만이더군요
그러니까 도망치듯 학교를 벗어나서 첫 만남이었으니까.. 한 3년쯤 되었던 가요.
그 형도 혼자서 왔더군요.
둘이 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앉아 있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인거 같아
일어서는 순간
앞에서 걸어오는 두명의 여자
형과나는 동시에 소리를 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역시나 같은 사람들.
그 누나들도 놀라운 눈치를 우리를 보고 멈칫하더군요
그렇게 만난 4인은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지금의 안부도 묻고 하면서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했습니다.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학교에서 지냈던 날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나 향수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그런 것들이 드네요.
중요한 것은 다들 잘 살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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