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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석이 축하해33도씨 이야기 2014. 6. 10. 12:14
읍사무소에 갈 일이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네가 내려왔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다. 가게 앞으로 가서 차를 대고 전화를 드리니, 엄마가 나오신다.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으니까 빨리 가자고 했다. 연금보험이 만기가 되었고, 보험금 수령을 할 나이가 되어 서류를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읍사무소 주차장에 대고, 읍사무소로 들어간 엄마를 기다린다. 시내는 많이 달라져있었고, 읍사무소의 위치도 달라져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시간이 좀 걸린다. 기다리기가 지겨워 읍사무소로 들어가니, 지인을 만나 읍사무소에 온 이유와 지난번에 한 번 보험회사에 보냈는데 또 보내라고 한다며, 지인에게 보험사를 성토한다.
다시 차로 돌아온 엄마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낸다. 가게에 봉투가 하나도 없더라. 꼬질꼬질한 봉투만 있더라. 나는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으려 한다. 엄마는 기어코 줘야 한다는 표정으로 그래도 받아라 하신다. 나도 쉽게 받을 수 없어 거절에 거절을 더한다. 팽팽한 신경전이 진행된다. 차가 가게에 이르자 엄마는 조수석에 봉투를 던지고 가게로 향한다. 그것으로 나는 졌다. 짧았던 신경전은 나의 패배.
전날 밤이었다. 돌아오는 금요일 아버지의 생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생각난 듯이 네 생일은? 이라고 물으셨다. 양력생일은 멀었다지만, 괜히 심통이나 오늘입니다. 오늘. 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조용히 셈을 하시더니 웃음을 짓는다. 요 며칠 째 바빴다고 우리 석씨 생일도 모르고 지났네라고 다시 웃는다. 그래 바쁘긴 했다. 조카의 돌잔치에 온 신경을 썼으며, 날이 조금씩 더워지면 가게일에 신경쓸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아마도 전날 일이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읍사무소 일도 아버지께 부탁하면 끝날 일을 부로 나를 부르신 게 분명하다. 꼬깃해진 봉투를 열어보니 엄마를 닮은 지폐가 들어있다. 하루 종일 엄마의 앞치마나,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가 해가 지고, 사람들이 집으로 모두 돌아가고, 일일드라마가 끝났을 시간에 펴지는 엄마의 허리와 같이 펴지는 낡은 지폐들. 그 낡은 지폐 몇 장이 꼬깃한 봉투에 담겨져 있었다.
봉투에는 익숙한 글씨로 석이 축하해. 라고 적혀있다. 뒤늦게 생일이라는 말을 빼먹은 것을 알게된 엄마는 다시 한번 생일이라는 말을 써놓는다. 볼펜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석자에는 흐리게 흔적이 남았다. 생일 보다 먼저 적혀있는 이름. 내 이름. 엄마는 어쩌면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말이다. 남들이 내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가장 먼저 불러준 사람.
그 낡은 봉투를 차 다시방에 두고 며칠을 다녔다. 봉투를 꺼내지도 않고, 돈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언젠가 돌려줘야 할 것만 같아서. 다시. 양력 생일인 오늘 봉투를 꺼내들어본다. 그리고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엄마는 왜 "석씨"라 하지 않고, "석이"라고 했을까"?'33도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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